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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죽이기' 이보다 더 자극적인 책이름이 있을까?

책의 제목으로 이만큼 자극적인 것이 없다. OOO 죽이기를 처음 본 것은 고향에 있는 낡고 작은 도서관에서 봤던 '김대중 죽이기'가 처음이였다. 대충 차례와 목차를 보니, 김대중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오해(해당 책의 작가의 말에 따르면)와 박정희 정권에서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사건 등을 다루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어릴 때라 큰 관심이 생기지 않아 바로 다시 넣어두었는데, 그 옆에는 '김대중 살리기'도 있었다는게 기억에 남는다. 살리기는 좀 다른 내용이 있었을까? 아무튼 'OOO 죽이기'란 제목은 그만큼 어린 시절 수많은 책 속에서 문득 지나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제목이고, <상실의 시대>, <1Q84>도 지나친 필자가 드디어 하루키의 책을 집게 만드는, 호기심을 당기게 만드는 작품명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선택이였고, 근래에 읽었던 소설같지도 않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한 기억마저도 깨끗하게 지워버릴만큼 <기사단장 죽이기>는 강렬하고 흡입력이 엄청난 작품이였다.

책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초상화 전문화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인공 '나'는 어느날 아내 '유즈'에게서 이혼 통보를 받는다. 정확한 사유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집을 나가려던 아내를 만류하고 대신 집을 비우고 생업을 내팽긴채 몇달 간 여행을 다닌다. 그리고 지음인 친구 '아마다 마사히코'에게서 동네의 그림교실 수업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과 전설적인 화가 '아마다 도미히코'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산 중턱의 집에서 관리도 할 겸 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정처없는 여행을 끝내고, 이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국면에 접어든 '나'는 생계가 아닌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며 제안들을 수락하고 입주한다. 그런데 그 집의 천장에는 아들도 모르게 숨겨져있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을 발견하고 뜯어보게 된다. 보면 볼수록 몇시간씩 보게 만드는 마성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 그 이후로 밤마다 울리는 알 수 없는 방울소리, 평범함과 거리가 먼 수수께끼의 남자 '멘시키'와의 만남, 그 집의 주인 도미히코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직면하면서 나아가는 이야기다.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1Q84>에 이른 7년만의 복귀작.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많은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1권, 미스테리와 오컬트가 이끄는 쌍두마차

이야기는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1권의 부제는 현현하는 이데아, 2권의 부제는 전이하는 메타포다. 출간 당시에는 하루키의 책은 2부작이면 상,하권으로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3부작의 마지막 권이 1,2권이 발매된 이후에 나오곤 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쉽게도 2부작이다. 왜 아쉬운가? 2권에서의 전개에 사람들의 평이 조금씩 갈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혹평을 몇 가지 가져오자면, '지나친 자가복제의 끝이다' '1권은 탄탄하게 쌓아가다가 2권에서 급하게 매듭지어 버린다' '지나치게 난해하다' 등이 있었다. 필자는 하루키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 자가복제의 평에는 공감할 수 없었고(하루키 첫 작품이므로), 대신 다른 평에는 조금은 공감한다. 1권만 보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미스테리, 오컬트 장르다. 600p라는 1권의 페이지 수는 결코 쉬운 마라톤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금방 걷게되는 거리다. 그 거리를 오컬트를 담당하는 '기사단장'과 기묘함을 담당하는 '멘시키'가 쉬지않고 번갈아가면서 주인공 '나'를 사건의 중심부로 끌어들인다. 특히 멘시키란 인물을 너무 매력적으로 잘 만들었다.

멘시키는 하얀 저택에서 혼자 사는 부호에, 은퇴 전까진 정보업계에서 일하던 인물이였다. 그래서인지 새삼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다방면의 여러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존경이라는 것이 마냥 칭송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남겨진 빚을 기반으로 한 기묘한 경의라는 것도 마냥 일반적이지 않다.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고 마는 추진력과 결단력은 그를 비범한 존재로 만들고, 나이는 들었으나 새하얀 백발의 모습은 흑발들의 세상에서 군계일학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의 이런 행동의 원천이 바로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카가와 마리에'를 곁에서 보기 위함인데, 자신의 친딸인지 확인하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그 가능성만을 가지고 곁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을 원한다. 이런 멘시키가 풍기는 기묘함과 비범함이 1권의 분위기를 지배했고, 멘시키와 함께 겪는 미스테리들이 분위기를 한껏 긴장상태에 놓이게 만든다. 마치 시간이 점점 흐르면 흐를수록 평범한 일상은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난징대학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일본 내에서 하루키의 역사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2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한다

그러나 2권에서 멘시키가 마리에를 만나면서부터 그러한 분위기가 옅어진다. 멘시키는 마리에를 보면서 그 답지 않게, 말을 더듬기도 하고, 긴장해서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하며, 무엇보다 표정이 평소의 여유로운 멘시키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친딸을 만나 당황한 아비의 모습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2권의 전반적인 흐름이 일부 독자들이 기대한 것과 다르게 흘러갈 것임을 내포한 장면이다. 1권까지 읽고 넘어온 필자에겐 '멘시키가 과연 어떻게 그리고 더욱 치밀하게 아키가와 마리에를 손에 넣기 위해서 어떤 짓들을 할 것인가' '기사단장은 어떤 존재이고, 그가 있었던 구덩이는 어디로 이어지는 공간인가, 매번 밤에 울리는 방울은 무엇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인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나는 과연 도모히코를 뒤잇는 전설의 화가가 될 것인가, 그는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와 같은 궁금증이자 전개가 예상되었다. 한마디로 하루키가 만든 설정, 판타지에 직면해서 어떤 진실이 밝혀지고, 인물들의 관계와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본인이 만든 이야기를 정면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옆에서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그것의 첫 모습이 말을 더듬는 멘시키였다. 

이 후의 멘시키는 비범하고 기묘한 모습이 분위기가 사라지고, 그저 딸아이를 보고싶고 곁에 두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비운의 아버지로 변모한다. 아무리 대단한 남자라도 자신의 혈육 앞에선 흔들리고 갈등하는, 일종의 부성애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치만 필자에겐 다소 아쉬운 설정붕괴로 남았을 뿐이다. 주인공 '나' 역시 <기사단장 죽이기>를 세상에 공표하고, 그만의 뛰어난 작품을 그려서 대작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종국엔 유즈와 다시 재결합하여 다시 예전처럼 초상화만 기계적으로 그리는 삶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집 앞 구덩이를 잇는 풍혈의 존재도, 그 풍혈 속을 통과하면서 만났던 돈 안나, 고미, 기사단장(이데아), 메타포들의 존재에 관한 궁금증도 해소되지 않고 마무리된다. 마치 주인공인 '나'가 자꾸 고리를 닫아야 한다고 되내이는 것처럼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한채 이야기가 닫혀버렸다. 대신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으로, 이 사건이 아니였다면 원래대로 가있어야할 자리로 되돌아갔을 뿐이다. 

 

미연시 게임에서 보이는 트루엔딩, 굿엔딩, 배드엔딩. 꼭 무조건 진엔딩을 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트루엔딩(True End)보다는 굿엔딩(Good End)을 선택한 하루키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결말은 아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결말은 나름대로의 감동이 있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자살한 동생, 비밀조직을 결사했으나 끝내 들통나서 처형당하고만 연인과 친구들.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기사단장 죽이기>를 만들었으나 결국 세간에 공표되지 못하고 치매로 죽어가던 아마다 도미히코. 그는 주인공 '나'가 이데아인 기사단장을 찔러 죽이는 모습에서 그가 과거에 죽이지 못했던 나치의 고관을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죽기 며칠 전에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영면에 잠들 수 있었다. 너무나 일찍 죽은 아픈 동생 '고미'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동생처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여아의 봉곳한 가슴을 볼 때마다 고미를 떠올리는 주인공 '나'. '나'는 후지산에서의 풍혈과 닮아 있던 메타포의 풍혈 속에서 고미와 돈 안나(의 형상을 한 것)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람의 생각을 잡아먹는 이중메타포의 촉수를 뿌리치면서 빠져나옴으로써,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죽은 동생처럼 사건 당시에는 가슴이 납작했지만 어느덧 가슴이 자란 마리에의 모습과 <하얀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 그림이 <기사단장 죽이기>와 함께 전소되는 모습에서 주인공 '나'의 트라우마는 해소되었고,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 이 기묘한 이야기가 끝났음을 암시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현실과 부딪힌 이상과 마주하는 등의 트루엔딩을 뭇 여러사람들이 바랬지만, 결국 하루키는 사건의 진상은 묻히고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채,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굿엔딩을 선택했다. 이에 관해서 나누는 '나'와 멘시키의 대화가 있다.

"진실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뿐입니다. 아마 결국에는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겠죠. 물론 저를 포함해서"
"다시 말해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지금 상황을 이대로 지키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제가 멘시키 씨 입장이라면 역시 진실을 알고 싶을 것 같아요. 일단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죠."
멘시키가 미소지었다
"그건 당신이 아직 젊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쯤 되면 당신도 분명 이 심정을 알게 될 겁니다. 진실이 때떄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어쩌면 트루엔딩 대신 굿엔딩을 쓰기로 결정한 하루키의 선택을 이해하기엔 필자가 '아직은' 너무 젊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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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책을 한 번 읽긴 읽어야겠는데 막상 읽자니 뭘 읽을지 고민되는 당신을 위해 읽을만한 책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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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눈에 띄는 표지다. 핑크색과 글씨체가 매우 과할정도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니라 소녀?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에르빈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실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역학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실험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양자역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친숙하게 대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이론이다. 특히 소설,영화,만화 등 여러매체에서 이제는 단골소재로 쓰이는 상황인데, 이번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니라 슈뢰딩거의 소녀다. 이제 저 소녀도 50%의 확률로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되는 내용인 것일까?

현대 일본에서 50여년이 지난 근미래의 일본. 도쿄 대신에 도키요라고 부르고, 약자컴퓨터의 발달로 모라벡이라는 어시스턴스 ai가 보편화되었으며, 어딘가 Z월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Z감염체가 떠도는 세계. 수공예를 좋아하는 발랄하고 솜씨 좋은 구레나이는 아버지에게서 프렌드 ai를 선물 받았고, 자신과 색만 다른 옷을 똑같이 입혀주고 '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다. 표지에 나와있는 분홍색 소녀가 구레나이, 파란색 소녀가 그녀의 경호원이자 개인교사이자 비서이기도 프렌드 ai 아이인 것이다.

오늘 시부야의 감염발생확률이 80%라는 양자컴퓨터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오늘만큼은 집을 벗어나 마누스의 수공예품을 쇼핑하고 싶은 구레나이가 아이와 함께 매장에 방문하여 같은 마누스의 매니아인 할머니를 만나서 실컷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며 즐긴다. 그러다 Z감염체가 출연하였고 아이는 두 사람을 데리고 도망치면서 멋지게 감염체 세 마리를 제압하였으나, 불운하게도 같이 있던 할머니가 뒤늦게 증상이 발현되어 구레나이를 뭄으로써 구레나이를 지키는데 실패하고 만다. 아직 사람으로써 죽고 싶었던 구레나이는 아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명령하지만, 제1원칙(로봇은 인간을 해할 수 없다)에 위배되어 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아이는 교묘하게 자살을 도와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자 자살'이다. 이름 한 번 기이하다.

 

평행우주 이론을 토대로 만들어진 5D체스. 다른 평행우주의 말을 가져올 수 있다. 대신 분기가 발생한다

 

슈뢰딩거 고양이에 대한 다세계 해석은 평행우주론의 시작

아이는 다세계 해석에 따라서 1초마다 50%확률로 실탄이 발사되는 권총 방아쇠를 구레나이에게 당길 때마다, 세계는 둘로 분열된다고 말해준다. 이를 100초 동안 반복하면 총 100개의 평행우주가 만들어지고, 죽는 순간에는 관찰자인 구레나이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을 관측하는 시점의 구레나이는 살아있다고 말한다. 즉, 관측에 성공하는 세계선이 존재하므로 제1원칙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나머지 세계선에선 구레나이를 죽임으로써, 자살시켜달라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굳이 권총으로 쏘지 않아도, 오늘 시부야를 오지 않았던 세계선, 롤리타풍의 수예를 취미로 삼지 않는 세계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세계선, Z발병체가 없는 세계선 등 수없이 많은 세계선이 존재한다고 말해주고, 작가는 이 중 몇 가지 세계선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언제나 서있다. 오늘 점심은 무엇으로 먹을지, 우산을 가지고 나갈것인가와 같은 작은 선택도 있고 구레나이처럼 신주쿠에 갈지말지, 어떤 종목을 구매할지, 진로선택에서 어떤 길을 나아갈지, 이 사람과 헤어져야할지와 같은 중요한 선택들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중요한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한 것을 두고 후회하거나 좌절하거나 혹은 안도하기도 한다. 필자 또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 선택을 했더라면 우리 집이 더 나아졌을텐데와 같은 후회와 고민을 끊임없이 한 적이 있고 그러한 번뇌는 들인 시간에 비례하여 해소되지 않았다.  

 

여주인공을 살린다는 아주 낮은 확률의 세계선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

 

우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런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다세계 해석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회계사라는 시험을 고르지 않았던 세계선에서의 나는 평범하게 취업해서 그 삶에 만족했을 것이고, 코인에 손대지 않았던 세계선에서는 무난하게 수험생활을 마치고 회계사가 되어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저렇게 했어봐야 망했을 것이다 라고 신포도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해서 성공한 혹은 행복한 세계선을 사는 내가 존재하고 그것들 또한 나라고 믿는 것이다. 수많은 세계선에서 행복하게 사는 '나'들이 있으니 비단 지금의 '내'가 그렇게 불행하다고만 볼 수 없다.  마치 구레나이를 죽였지만, 살아있는 세계선이 존재하기에 제1원칙을 어겼다고 볼 수 없는 아이의 행동처럼.

반대로 미래도 가능하다. 아침에 늦잠을 잘건지 말건지, 저녁에 러닝운동을 할건지 말건지에 따라서도 분기되어 게으른 나와 부지런한 나, 살 뺀 나와 살 찐 나가 모두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작은 선택들을 선택해나가며, 마침내 마지막에는 회계사에 떨어지거나 포기하는 수많은 세계선이 아닌, 적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합격한 세계선에 도달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수년간 생긴 후회와 고민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저기서 회계사란 단어 대신에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목표로 치환해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자. 정신승리, 단순긍정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자신이 목표하는 삶에 가까워진다면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다름없다. 여러가지 가능성과 경우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고양이와 다른 점은 우리들의 여러가지 상태는 계수기와 방사선의 붕괴확률(50%)에 따라서 관측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발생하는 작은 분기들을 선택하는 우리들의 행동, 의지, 결정에 따라서 확률이 정해지고, 직접 관측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아이가 말했듯이 자신을 관측하는 시점의 나는 살아있다(=달성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의외(?)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보다 앞선 영조의 세자실험

 

이과적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다룬 SF 디스토피아 단편집

오늘 이야기한 것은 '슈뢰딩거의 소녀' 였지만, 이 책은 마쓰자키 유리 작가의 총 6개의 단편모음집이다. 근의 공식만 외우고 수학을 싫어하는 수포자의 이세계탈출기 '이세계 수학'과 65세에 모든 인류가 죽는 세상에서 64세 할머니와 소녀의 우정을 그린 '예순다섯 데스'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오히려 순수재미로만 따진다면 이 쪽이 더 높았고, 나머지 이야기들도 대체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다만 마지막의 '펜로즈의 처녀'는 다소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심층있게 이론을 다루기보다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재미난 SF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데에 집중했으므로, 이과적 단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너무 화려한 책표지에 위화감을 느끼지 말고 꼭 집어서 보자. 하루가 아깝지 않을만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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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책을 한 번 읽긴 읽어야겠는데 막상 읽자니 뭘 읽을지 고민되는 당신을 위해 읽을만한 책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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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으로 추리소설 계에 이름을 떨친 남자 아야츠지 유키도가 이번엔 학생살인추리물로 돌아왔습니다. 정원이 32명인 반에 매년 망자 한명이 더 추가된 33명이 3반으로 들어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인 망자가 현실세계에 끼여 저주를 일으킵니다. 이 저주는 필연적이기에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망자일 것 같은 한 사람을 없는 사람취급을 하면 반 전체가 저주를 피할 수 있다는 방법이 전해져 올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학교의 풍습을 알리 없는 전학생 주인공은 망자취급 하던 학생과 친구로 지내면서 저주가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명씩 죽어가는 가운데 학생들은 망자일 것 같은 사람을 죽이느라 서로를 죽이기 시작합니다.

 

작가가 미스테리작가이자 동시에 추리소설작가이기 때문에 호러미스테리한 분위기(저주받은 3반)와 추리적 요소(누가 망자인가)가 잘 녹아내렸습니다. 억지스러운 요소나 뜬금없는 전개도 없어서 읽는데 무척 편했습니다.

 

 

잔인한 호러소설이자 풋풋한 청춘소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리둥절한 남자 전학생과 수수께끼를 품은 신비의 여학생' 관계를 잘 짜서 청춘소설로도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점때문에 애니메이션화가 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과 철저한 복선회수

추리소설의 재미는 역시 반전과 이를 통한 복선회수일 겁니다. 충분히 의심할만한 복선들이 있었는덷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읽게 만든 점에서 작가의 묘사력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추리소설의 대가 아야츠지 유키도의 작품, <Another>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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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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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가시노 게이코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작가는 일본 추리소설 계에서 무척 저명합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처럼 잔인한 살인에 로맨스가 들어간 이야기도 있고, <한여름밤의 방정식>에선 과학적 추리가 들어간 살인사건을 다루는 등 다작임에도 불구하고 겹치지 않게 살인추리소설을 써내려 가는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가 이번에는 살인이라는 요소를 넣지 않고 시간물에 추리를 넣은 소설을 냈으니 어떻게 또 기대가 되지 않을까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명탐정 캐릭터나 살인사건 대신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판타지적 설정이 있습니다. 도둑질을 하다가 잠시 숨어들기위해 빈집이던 나미야 잡화점에 온 백수 3명이 알 수 없는 기현상에 갖혀 30년 전 주인이던 나미야 유지와 그 당시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장난스러운 편지도 모두 정성스레 답변해주는 걸로 유명했던 가게주인은 여러가지 사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슴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 치여 고민할 여유가 없기도 하고, 누구에게 말못할 고민이 있지만 쉽게 털어놓을 수 없어 혼자 껴앉은 채로 지내기도 합니다. 그런 모두의 고민들에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따뜻하게 들어주고 격려해주는 감동이야기. 삶에 여유가 필요할 때,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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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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