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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죽이기' 이보다 더 자극적인 책이름이 있을까?

책의 제목으로 이만큼 자극적인 것이 없다. OOO 죽이기를 처음 본 것은 고향에 있는 낡고 작은 도서관에서 봤던 '김대중 죽이기'가 처음이였다. 대충 차례와 목차를 보니, 김대중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오해(해당 책의 작가의 말에 따르면)와 박정희 정권에서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사건 등을 다루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어릴 때라 큰 관심이 생기지 않아 바로 다시 넣어두었는데, 그 옆에는 '김대중 살리기'도 있었다는게 기억에 남는다. 살리기는 좀 다른 내용이 있었을까? 아무튼 'OOO 죽이기'란 제목은 그만큼 어린 시절 수많은 책 속에서 문득 지나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제목이고, <상실의 시대>, <1Q84>도 지나친 필자가 드디어 하루키의 책을 집게 만드는, 호기심을 당기게 만드는 작품명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선택이였고, 근래에 읽었던 소설같지도 않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한 기억마저도 깨끗하게 지워버릴만큼 <기사단장 죽이기>는 강렬하고 흡입력이 엄청난 작품이였다.

책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초상화 전문화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인공 '나'는 어느날 아내 '유즈'에게서 이혼 통보를 받는다. 정확한 사유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집을 나가려던 아내를 만류하고 대신 집을 비우고 생업을 내팽긴채 몇달 간 여행을 다닌다. 그리고 지음인 친구 '아마다 마사히코'에게서 동네의 그림교실 수업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과 전설적인 화가 '아마다 도미히코'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산 중턱의 집에서 관리도 할 겸 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정처없는 여행을 끝내고, 이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국면에 접어든 '나'는 생계가 아닌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며 제안들을 수락하고 입주한다. 그런데 그 집의 천장에는 아들도 모르게 숨겨져있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을 발견하고 뜯어보게 된다. 보면 볼수록 몇시간씩 보게 만드는 마성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 그 이후로 밤마다 울리는 알 수 없는 방울소리, 평범함과 거리가 먼 수수께끼의 남자 '멘시키'와의 만남, 그 집의 주인 도미히코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직면하면서 나아가는 이야기다.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1Q84>에 이른 7년만의 복귀작.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많은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1권, 미스테리와 오컬트가 이끄는 쌍두마차

이야기는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1권의 부제는 현현하는 이데아, 2권의 부제는 전이하는 메타포다. 출간 당시에는 하루키의 책은 2부작이면 상,하권으로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3부작의 마지막 권이 1,2권이 발매된 이후에 나오곤 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쉽게도 2부작이다. 왜 아쉬운가? 2권에서의 전개에 사람들의 평이 조금씩 갈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혹평을 몇 가지 가져오자면, '지나친 자가복제의 끝이다' '1권은 탄탄하게 쌓아가다가 2권에서 급하게 매듭지어 버린다' '지나치게 난해하다' 등이 있었다. 필자는 하루키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 자가복제의 평에는 공감할 수 없었고(하루키 첫 작품이므로), 대신 다른 평에는 조금은 공감한다. 1권만 보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미스테리, 오컬트 장르다. 600p라는 1권의 페이지 수는 결코 쉬운 마라톤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금방 걷게되는 거리다. 그 거리를 오컬트를 담당하는 '기사단장'과 기묘함을 담당하는 '멘시키'가 쉬지않고 번갈아가면서 주인공 '나'를 사건의 중심부로 끌어들인다. 특히 멘시키란 인물을 너무 매력적으로 잘 만들었다.

멘시키는 하얀 저택에서 혼자 사는 부호에, 은퇴 전까진 정보업계에서 일하던 인물이였다. 그래서인지 새삼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다방면의 여러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존경이라는 것이 마냥 칭송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남겨진 빚을 기반으로 한 기묘한 경의라는 것도 마냥 일반적이지 않다.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고 마는 추진력과 결단력은 그를 비범한 존재로 만들고, 나이는 들었으나 새하얀 백발의 모습은 흑발들의 세상에서 군계일학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의 이런 행동의 원천이 바로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카가와 마리에'를 곁에서 보기 위함인데, 자신의 친딸인지 확인하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그 가능성만을 가지고 곁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을 원한다. 이런 멘시키가 풍기는 기묘함과 비범함이 1권의 분위기를 지배했고, 멘시키와 함께 겪는 미스테리들이 분위기를 한껏 긴장상태에 놓이게 만든다. 마치 시간이 점점 흐르면 흐를수록 평범한 일상은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난징대학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일본 내에서 하루키의 역사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2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한다

그러나 2권에서 멘시키가 마리에를 만나면서부터 그러한 분위기가 옅어진다. 멘시키는 마리에를 보면서 그 답지 않게, 말을 더듬기도 하고, 긴장해서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하며, 무엇보다 표정이 평소의 여유로운 멘시키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친딸을 만나 당황한 아비의 모습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2권의 전반적인 흐름이 일부 독자들이 기대한 것과 다르게 흘러갈 것임을 내포한 장면이다. 1권까지 읽고 넘어온 필자에겐 '멘시키가 과연 어떻게 그리고 더욱 치밀하게 아키가와 마리에를 손에 넣기 위해서 어떤 짓들을 할 것인가' '기사단장은 어떤 존재이고, 그가 있었던 구덩이는 어디로 이어지는 공간인가, 매번 밤에 울리는 방울은 무엇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인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나는 과연 도모히코를 뒤잇는 전설의 화가가 될 것인가, 그는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와 같은 궁금증이자 전개가 예상되었다. 한마디로 하루키가 만든 설정, 판타지에 직면해서 어떤 진실이 밝혀지고, 인물들의 관계와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본인이 만든 이야기를 정면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옆에서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그것의 첫 모습이 말을 더듬는 멘시키였다. 

이 후의 멘시키는 비범하고 기묘한 모습이 분위기가 사라지고, 그저 딸아이를 보고싶고 곁에 두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비운의 아버지로 변모한다. 아무리 대단한 남자라도 자신의 혈육 앞에선 흔들리고 갈등하는, 일종의 부성애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치만 필자에겐 다소 아쉬운 설정붕괴로 남았을 뿐이다. 주인공 '나' 역시 <기사단장 죽이기>를 세상에 공표하고, 그만의 뛰어난 작품을 그려서 대작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종국엔 유즈와 다시 재결합하여 다시 예전처럼 초상화만 기계적으로 그리는 삶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집 앞 구덩이를 잇는 풍혈의 존재도, 그 풍혈 속을 통과하면서 만났던 돈 안나, 고미, 기사단장(이데아), 메타포들의 존재에 관한 궁금증도 해소되지 않고 마무리된다. 마치 주인공인 '나'가 자꾸 고리를 닫아야 한다고 되내이는 것처럼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한채 이야기가 닫혀버렸다. 대신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으로, 이 사건이 아니였다면 원래대로 가있어야할 자리로 되돌아갔을 뿐이다. 

 

미연시 게임에서 보이는 트루엔딩, 굿엔딩, 배드엔딩. 꼭 무조건 진엔딩을 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트루엔딩(True End)보다는 굿엔딩(Good End)을 선택한 하루키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결말은 아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결말은 나름대로의 감동이 있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자살한 동생, 비밀조직을 결사했으나 끝내 들통나서 처형당하고만 연인과 친구들.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기사단장 죽이기>를 만들었으나 결국 세간에 공표되지 못하고 치매로 죽어가던 아마다 도미히코. 그는 주인공 '나'가 이데아인 기사단장을 찔러 죽이는 모습에서 그가 과거에 죽이지 못했던 나치의 고관을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죽기 며칠 전에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영면에 잠들 수 있었다. 너무나 일찍 죽은 아픈 동생 '고미'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동생처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여아의 봉곳한 가슴을 볼 때마다 고미를 떠올리는 주인공 '나'. '나'는 후지산에서의 풍혈과 닮아 있던 메타포의 풍혈 속에서 고미와 돈 안나(의 형상을 한 것)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람의 생각을 잡아먹는 이중메타포의 촉수를 뿌리치면서 빠져나옴으로써,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죽은 동생처럼 사건 당시에는 가슴이 납작했지만 어느덧 가슴이 자란 마리에의 모습과 <하얀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 그림이 <기사단장 죽이기>와 함께 전소되는 모습에서 주인공 '나'의 트라우마는 해소되었고,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 이 기묘한 이야기가 끝났음을 암시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현실과 부딪힌 이상과 마주하는 등의 트루엔딩을 뭇 여러사람들이 바랬지만, 결국 하루키는 사건의 진상은 묻히고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채,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굿엔딩을 선택했다. 이에 관해서 나누는 '나'와 멘시키의 대화가 있다.

"진실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뿐입니다. 아마 결국에는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겠죠. 물론 저를 포함해서"
"다시 말해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지금 상황을 이대로 지키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제가 멘시키 씨 입장이라면 역시 진실을 알고 싶을 것 같아요. 일단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죠."
멘시키가 미소지었다
"그건 당신이 아직 젊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쯤 되면 당신도 분명 이 심정을 알게 될 겁니다. 진실이 때떄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어쩌면 트루엔딩 대신 굿엔딩을 쓰기로 결정한 하루키의 선택을 이해하기엔 필자가 '아직은' 너무 젊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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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책을 한 번 읽긴 읽어야겠는데 막상 읽자니 뭘 읽을지 고민되는 당신을 위해 읽을만한 책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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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집중이 안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도서관 라운지에 있는 아무 책이나 꼽아들어서 읽은 것이 벌써 네 번째인데, 이 중 세 번이 페미니즘이 연관되어있다. 새삼 페미니즘이 얼마나 우리 일상에 침투해왔는지, 그리고 권력과 결부하면 일개 잡스러운 사상도 얼마나 강한 파급력을 갖는지 깨닫게 된다. 오늘 리뷰할 책은 <미스 함무라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을 읽고나면, 저번주에 읽었던 장류진, 정세랑의 단편집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등단한 작가만이 진정한 작가임을 알려주는 좋은 교보재이기 때문이다.

 

등단한 진짜작가와 등단하지 못한 가짜작가의 차이
아이스크림으로 비유를 해보자. 장류진의 소설은 불쾌한 향이 첨가된 구슬 아이스크림이다. 이따금씩 흠칫하게 만드는 향이 나지만, 괜찮다. 아이스크림 맛 자체는 문제없이 맛있다. 먹기 쉬워서 금방 그릇을 비웠다. 정세랑의 소설은 여러맛이 담긴 하드아이스크림이다. 민트맛이 강한 호불호가 있고, 녹으면 손에 달라붙어 찝찝하지만 못 먹을정도는 아니다. 민트맛말고도 다른 딸기맛, 초코맛도 조금 섞여있어서 참고 먹을만했다. 딸기맛은 의외로 꽤나 훌륭하다. 그렇다면 우리 문우석의 소설은 어떨까. 이건 형형색색의 색종이를 원형으로 구겨서 아이스크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당연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고, 씹을수록 맛없는 종이를 질겅이다 뱉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애초에 이건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등단하지 않은 작가가 쓴 글은 그만큼 등단한 작가가 쓴 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등단하지도 않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정말 보기 드물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등단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소설의 기본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고, 보편적으로 인식된 재미라는 것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발현시킬 수 있는 실력이나 자신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무언가를 사람들에게서 설득하는 언어력이 필요하다. 재미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은 위의 실력과 더불어서 여러가지 재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정말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은 읽는 독자에게 있어서 평생 그 순간과 글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동기 혹은 추억이 된다. 

 

또 너야? JTBC?

 

좋은 작품이 드라마화 되지 않는다. 수요를 맞춘 작품이 드라마화된다
그렇지만, 어디 좋은 책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인가? 등단한 작가들도 좋은 책을 쓰기가 어려운데, 이젠 등단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본인을 작가라고 자칭타칭하면서 양산형 글을 쏟아내고, 너무 좋은 책이랍시고 드라마화하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색종이로 구긴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이라고 우기고, 소설의 본질인 재미와 감동보다는 사상에 초점을 맞췄으면서 이건 소설책이요, 이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착하고 좋은 책이요, 드라마화까지 된 대단한 원작이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우리편이기만 하면, 책 자체를 읽어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너무 재밌어요 홍보하고, 띄워주고, 비판리뷰는 나쁜 놈으로 몰아간다. 굳이 책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전반이 그런 확증편향과 사상중심의 팬덤문화가 주를 이룬지 꽤 되었다.

 

이 책이 드라마화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런 한심한 현상의 방증이기도 하다. 이 책은 385p로 꽤 짧지 않으나, 단 11p만에 페미니즘 냄새가 너무 역해서 앞 머릿말을 찾아봤다. 그 다음 작가 이름을 구글에 쳐봤고, 거기서 페미니즘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유명한 남페미니스트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역작, 김규삼의 <비질란테>의 드라마를 맡으신 각본가셨다. 작품을 망친 범인이 멀리있지 않았다. 등단하지도 않은 사람이 각본가로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건 회계사 시험 합격도 안하고서 회계감사 맡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광기의 시대에서 나온 것이 <미스 함무라비>를 비롯한 수많은 페미니즘 소설들. 덕분에 수요층만 맞으면 수준미달의 글들도 베스트셀러가 가능했던 시대

 

남녀이분법과 부자연스러운 글의 흐름 
초임여성판사의 유쾌한 법정활극이라는 <미스 함무라비>에는 이미 헌법 위에 군림하는 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권여징남이다. 모든 남자는 가해자, 가해자가 아니라면 구태문화를 강요하는 꼰대나 남의 공적을 가로채는 인간 등으로 표현하여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나쁜 사람들이며, 반면 모든 여자는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아니라면 구태문화를 타파하는 개혁가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의 수호자이고, 가난이나 성적 협박에서 하루하루 지옥처럼 살아가는 연민을 지어내는 자이다.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좋은 사람들,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참으로 기괴한 구성이지만, 페미니즘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 부자연스러움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이 부자연스러움을 오히려 잘 썼다고 말한다. 저번에도 썼지만, <슈뢰딩거의 소녀> 단편집 대부분은 여성주인공이지만 이에 이상함을 느낄 수 없다. 남성에 대한 혐오가 없고, 작위적이지 않은 설정과 상황때문이다. 11p만에 뜬금없이 체구작은 여성경위를 설명하면서 작은 여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니 어쩐다니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있는건 정말 작위적이였다. 최소한 누군가 저 여성경위에게 뭐라고 하는 장면을 넣고서 저런 설명을 넣어야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작가의 하고싶은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글의 문맥을 무시한 채 다이렉트로 등장인물을 통해 나오고 있다. 100% 단언컨대 이 소설은 절대로 등단할 수 없다.

 

 

등장인물은 작가의 지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돋보이는 주인공을 만들 능력이 없는 작가는 주변인물을 전부 저능아로 만들어버린다.

 

 

등단하지 못한 가짜작가의 한계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재밌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고민, 갈등, 서사들을 주변 인물들과 관계하면서 자연히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는 인물들이 지나가는 길에 이정표를 세우고, 적절한 장애물들을 배치하기만 하면, 재밌는 한 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치만 이런 <미스 함무라비> <82년생 김지영>처럼 캐릭터들을 제한하면 어떻게 되느냐. 머릿속에서 이미 답을 정해놓고 가는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끌어가는 힘이 전혀 없다. 잘 짜여진 설정과 세계 속에 인물을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작가들이 인물들을 떠밀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남자성추행범을 멋지게 잡아내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하고 박차오름을 지하철 안으로 밀어놓는다. 그 다음은 폐쇄적인 구조문화를 타파하는 당돌한 여성을 보여주고 싶으니, 한부장은 꽉막힌 전형적인 꼰대로 설정하고 이에 윽박지르라고 부장실에 또 밀어놓고, 그 다음은 또 법정소설이니까 연민을 자극하는 한부모 어머니와 이를 괴롭히고 욕심많은 나쁜 남사장을 공명정대하게 가려내는 모습을 담으려고 법정으로 밀어놓고,,,그냥 이야기 전개가 이런 식이다. 인과관계나 특정서사, 기승전결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여성의 멋있는 장면들을 촬영하기 위해서 그 때마다 박차오름이란 배우를 들이미는 방식. 매끄럽지 못한 이음부나 자잘한 설정오류는 상관없다. 어짜피 옴니버스식이니까 하고 대충 넘어가는 방식.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고통을 참고서 읽어봤지만, 이게 전부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자들이 받았다던 그 수많은 차별을 강조하고 억울함을 표현하고자 모든 갈등에 여주인공을 밀어넣어서, 종국엔 도대체 82년생 여자가 왜 할머니들이 받았던 차별을 겪는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차별과 고통을 당하게 되는게 물리적으로 말이되냐 비판을 듣는 것처럼, <미스 함무라비>도 그냥 멋있고 정의로운 여성의 모습과 찌질하고 범죄저지르고 꽉막힌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주인공이 내용만 조금씩 다르고 똑같은 구조의 순회공연을 무한히 돈다. 이건 더이상 소설이 아니다. 그냥 작가의 지능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이 작가의 사상을 그대로 배설하는 연극이고, 사상이 쉴 새 없이 주입되는 고문기계다. 그것도 지독하게 재미가 없는.

 

진짜 박치기 공룡, 파키케팔로사우르스

 

 

이렇게 글이 재미없는 이유는 뭘까? 당연하지만, 등단한 진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기본적인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오류도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나 글의 자연스러움도 뒷전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작가의 사상전파를 제1순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지극히 작위적인 연출의 연속이고, 정상인으로써는 억지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만이 존재한다. 적어도 장류진과 정세랑의 페미니즘 색채가 담긴 단편들은 이야기가 어느정도 진행되고, 설정과 내용의 끝맺음이 확실한 단편 즉, 소설이 맞았다. 페미니즘의 요소를 넣다보니 조금의 핍진성,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용납못할 수준이 전혀 아니였다. 그치만 우리의 <미스 함무라비>는 아니다. 모든 것을 공명정대하고 능력있는 신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독 모든 사건은 주인공에게서 나오고, 심지어 그 모든 갈등을 회피하지않고 전부 들이박아버리는 박치기공룡이 되었다. 평범한 정상인이라면 연이은 갈등의 연속에서 지친다거나 어떤 변화나 계기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서 나아간다던가 할텐데, 그냥 체력이 무한한 기계처럼, 어떠한 고뇌도 내적갈등도 없는 완벽한 소시오패스처럼 무한히 굴레를 반복한다. 그녀가 하는 유일한 행동은 여자피해자에게 공감해서 눈물 흘리거나, 남성 가해자,권력자에게 소리 치는 것.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건 더이상 소설이 아니다. 페미니즘패널로 한 목소리 내자니 토론에서 다른 방송인, 정치인 패널들에게 얻어맞는 것이 두렵고, 그렇다고 인정욕구를 포기할 순 없으니 시대와 팬덤에 편승해서 나온 욕구해소용 부산물이다. 그것도 지독하게 유치한.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은 한 단원마다 중간에 끼어있는 부분마저 심각한 오류와 통계를 늘어놔서 모든 파트가 수준미달이였다.다. 그래도 <미스 함무라비>는 한 단원마다 중간에 끼여있는 법조인들만이 알 수 있는 법조계 이야기나 오해와 편견들은 오히려 괜찮았다. 덕분에 최악의 소설은 면했다. 특정사건 관련이야기, 오판에 대한 판사들의 고뇌 등 이런 쪽이 작위적이지도 않고, 당연한거지만 현실의 이야기였다보니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만약 이 파트가 없었고, 내용이 본편만으로 이루어졌었다면 아마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드라마나 영화의 법조인만 사람들이 알고 있지, 현실의 법조인들이 어떤 갈등과 사건을 겪는지는 대중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이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관련 책을 내보시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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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번 읽긴 읽어야겠는데 막상 읽자니 뭘 읽을지 고민되는 당신을 위해 읽을만한 책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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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갈리는 단편집 모음집

지금까지 읽은 단편집들 중에 호불호가 가장 큰 책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는 작품은 정말 재밌고, 참 기발한 SF를 썼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단편집은 이번 건 그냥 정제되지 않는 상상력(이라 쓰고 난잡함)을 그대로 옮겼구나 하고 스윽 넘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은 몇몇의 단편집 때문이라도 누군가에게 추천해줄만한 책이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내 목소리가 주변 사람을 살인자로 만든다면

단순히 교단에서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기만 했을뿐인데, 그 목소리를 6개월 이상 꾸준히 들으면 살인자로 만든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할까? 살인교사죄로 당장 체포해야할까? 아니면 이 사람이 한 행위가 아니니 무관하게 사회에 냅두어야할까? 근미래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남에게 영향을 주는 '괴물'들을 납치하여 수용소에 가둔다. 그치만, 죄수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그들에게 유한한 지원을 해주면서, 성대수술만 한다면 다시 내보내게 해준다는 제안까지 제시한다. 이러한 능력도 꽤나 흔한 소재지만, 이러한 능력자들끼리 모여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은 상당히 안정적인 재미를 준다. 괜히 대표작이 아니다. SF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도 쉽게 재미를 느낄만한 단편집이다.

 

블랙미러 시즌1 3화, '당신의 모든 순간'

 

<리틀 베이비블루 필> 평생 기억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알약이 있다면

<블랙미러> 에도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눈에 녹화, 재생이 가능한 칩을 넣는 것이 상용화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내용을 담은 에피소드가 그러한데, 소재나 전개가 매우 유사했지만 그 묘사가 사회, 국가로 더 크게 나타냈기에 재미 또한 배가 되었다. 자꾸 잊어버리는 치매노인들이 충격적인 배우자의 죽음은 잊지않고 또렷히 기억한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개발된 알약. 그러나 처음의 의료용 목적사용과는 다르게 학생들에게 퍼져, 컨닝 아닌 컨닝을 가능하게 했고, 그 다음엔 사랑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연인들, 영화의 명장면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영화애호가들에게 퍼지더니, 많은 분야에서 각각의 이유로 오남용되었고, 결국엔 인지장애의 부작용이 한 세대 뒤에 나타난다는 이야기. SF를 많이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자극적이면서 재밌는 작품이다.

 

페미니즘 작품들이 별로인 이유

지금까지는 재밌는 작품에 대한 칭찬이였고, 사실 이 다음이 하고싶은 말이다. 1주일 전에는 페미니즘 작가의 단편선을 읽었고, 2주 전에는 평범한 일본작가의 SF 단편선을 읽었다. 그리고 오늘은 페미니즘 작가의 SF 단편선을 읽었다. 정세랑 작가는 검색해보니 꽤나 유명한 페미니즘 작가였지만, 이번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 에는 페미니즘을 제외한 SF만 모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페미니즘이란 걸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단편선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느끼면서 페미니즘 색채가 담긴 작품이 왜 별로인지 이제서야 납득했다.

첫번째, 남성에 대한 혐오묘사의 유무 

2주 전에 읽은 <슈뢰딩거의 소녀>에서는 대부분의 화자가 여성이였음에도, 악랄한 남자 악당이 등장했음에도 전혀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작가는 페미니즘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야 그럴것이 그(녀)는 남성을 혐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순다섯 데스>에는 뇌물을 받아먹는 남성, 상대를 악인으로 간주하고 아이의 보호자를 죽여버리는 남성이 등장하지만 정말 그 뿐이다. 혐오가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정세랑 작가와 장류진 작가의 단편집에는 남성에 대한 혐오가 조금씩 묻어났다. <후쿠오카 가이드>에서는 예쁜여자와 자는 것을 트로피처럼 여기는 남성, <11분의 1>에서는 능글맞게 순진무구한 유경이를 이용하는 남성, 쭈뼛쭈뼛이 기본모드이고 끼룩끼룩 꽥꽥 거리는 남성들이 나온다. 일본 작가는 개연성을 위한 남성들의 설정이였기때문에 혐오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두 작가들의 묘사에는 평소 페미니스트들이 혐오하는 남성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혐오가 느껴졌고 덕분에 재밌게 읽다가도 반감을 갖게 만든다. 

 

하천정비사업은 환경파괴지만, 무단취식과 취사는 환경파괴가 아니고 천렵이다. 이런 어줍잖은 가르침, 지겹다

두번째, 독자를 가르치려 든다

허영만의 <식객>이 참 재밌지만, 그렇다고 최고의 작품이 아닌 이유는 어줍잖게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다. <파묘>가 천만영화일정도로 재밌지만, 최고의 작품은 아닌 것이 어줍잖은 반일정서를 담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작가들도 나름 재밌는 작품을 내긴하지만, 최고가 아닌 이유는 어줍잖게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다. <82년생의 김지영>이 엉터리 통계와 짜집기 논문으로 막간마다 쓴 것이 그러하고, 여성의 억압과 생태계의 위기를 다같이 가부장적 남성문화의 산물로 보고, 지금까지 서구 근대가 무시했던 부분을 생태·여성적 시각으로 다시 보자는 '에코페미니즘'의 색채가 담긴 <리셋>이 그러하다. 환경이라곤 고작 지렁이가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먹는 것 정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환경을 논한다는 게...참으로 가볍다. 게다가 정말이지 비겁한 점은 정작 과학서적, 환경서적에서 근거와 실험, 논문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글, 그림, 영화 등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없는 일방향에서만 저렇게 메시지를 전파하고 그 뒤의 논박은 아예 무시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페미니즘이 강할수록 유치하다

이세계물이라는 장르가 있다. 현생에서 실패한 삶을 사는 남자 주인공이 트럭에 치여서 다른 세상에서는 훌륭한 용사가 되어 마왕을 무찌르고 예쁜 여자 동료들에게 둘러쌓여서 하하호호 한다는 전형적인 먼치킨 뽕빨물이다. 물론 이런 장르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즐기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대방을 수준이하의 사람으로 그리거나, 별것도 없는 주인공에게 능력있는 사람들이 빌빌기는 꼴을 쓰는 것은 솔직히 말해 유치하다. 사람이 유치하다는 게 아니라 작품수준이 현저하게 내려간다. 가상의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때리 것이나 다름없다. <후쿠오카 가이드>에서 몸짱 영업짱 외모짱 인간관계 좋은 지훈이 어째서인지 이혼녀 지유 앞에서 감탄만하고 침 질질흘리는 원숭이가 되어버리고, <11분의 1>의 뛰어난 사업가인 김남선 선배와 다른 뛰어난 연구원인 9명의 선배들은 첨단과학의 최전선에서 연구하는  뛰어난 수준이지만, 기선이 좋아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능력도 없는 유경이에게 모든 결정권을 넘기고 빌빌긴다. 개연성이고 핍진성이고를 떠나서 너무 유치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하다. 페미니즘 관련 토론에서 페미니즘 측은 단 한번도 오세라비나 이준석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멍청한 허수아비를 만드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좋은 작품은 작품 외적인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한다

정리하자면, 페미니즘 색채가 강한 작품은 남성혐오가 묻어있어서 다소 반감이 드며, 얕은 지식과 짧은 식견으로 독자를 가르치려들려고 해서 별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참고 보려고 해도 작품자체가 유치해서 재미마저도 떨어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페미니즘 색채가 짙은 작품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장류진의 <잘 살겠습니다>를 읽고서, 계산적인 여주인공을 계산없이 남을 응원하게 만드는 빛나언니의 모습에 조금은 뭉클했고, 정세랑의 <리틀 베이비블루 필>을 읽고서, 정말 이런 약이 개발되면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생각하며, 작가의 전개와 묘사에 감탄했다. 페미니즘 색채만 버리면 얼마든지 재밌고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동안 정치권력과 결부하여 대한민국의 남녀갈등을 만들어 파국을 만들어냈던 페미니즘이 이제서야 질타를 받고, 그간 해왔던 행적들이 상당히 부끄럽고 백해무익하다가는 것이 사회의 분위기로 잡아가고 있다. 그러니 작가분들도 굳이 수준낮은 작품보다는 그 자체로 재밌고 좋은 작품들을 써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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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어느 국가든 경쟁사회가 아니겠냐만은 자원도 없고, 지리적으로도 이점이 없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인적자원에 투자해왔고, 이는 치열한 경쟁사회와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한 효율적인 인간상이 자연스럽게 많이 탄생하게 되었다. 가령 기브 앤 테이크를 철저하게 지키는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이 그러하고, 연봉을 토대로 월세, 공과금, 할부금 등을 수 분간 따져보고 나서야 2000원 테이크아웃 커피를 살 결심을 하는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의 주인공이 그렇다. 장류진 작가가 쓴 단편집의 화자들이 거의 전부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조금은 지루한 감은 있으나, 뭐 어떠한가. 나도 그렇고 사실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효율과 합리를 높은 가치에 두고, 이것이 행복한 삶과 성공한 인생에 도달하는데에 필연적인 동앗줄이라고 여기지 않은가.

<새벽의 방문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집의 플롯은 대체로 비슷하다. 효율적이고 계산적인 인간상과 그렇지 않은 인간상이 만나면서 생겨나는 짦은 일화들이 담겨져있다. 확정일자도 모를정도로 어리숙하고, 상대방이 준 선물이 얼마치인지를 따지지 않는 <잘 살겠습니다>의 빛나언니, 월급이 포인트로 부여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돈도 어찌보면 이 사회시스템의 포인트가 아니냐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웃으며 넘기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거북이알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 주인공들이 생각하는 계획과 다르게 행동하는 인물들이다. 자신들과는 다름에 조금은 불쾌해하고 조금은 피곤해하지만, 종국엔 마음에도 없이 쓴 손편지에 감동하는 모습의 빛나언니를 응원하게 되고, 거북이알의 레고와 커피머신을 사서 케빈과 데이빗과의 갈등을 해결하기도 한다. 

 

흥행하여 드라마화에 성공했다. 보진 않았지만 왼쪽이 거북이알, 오른쪽이 안나

 

나 또한 평생을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왔기에, 단편집의 주인공들의 상황에 무척이나 공감했다. 상식선에선 이해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멀리했고, 좁은 식견에서 내린 결정이 합리적이고 최선의 판단이라고 여겼으며, 생각한 계획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변수로 인해 다르게 진행될 때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성향을 계속 가져간 것은 그것이 성공한 삶에 필요조건이요, 행복한 삶에 도달하는 지름길이라 믿어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심했던 20대 초중반을 넘어서 앞자리가 바뀐 지금을 되돌아보면 여전히 그런 성향이 없진 않지만, 상당히 옅어졌고 그에 대한 열렬한 믿음 또한 사라졌다. 그리고 더이상 계획과 달리 상황이 나빠져도 스트레스 받고, 좌절하지 않고 더 나아가는 데에 집중하는 성향으로 바꿔가고 있다.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계산적이고 최선의 효율을 따져가며 살아가게 됐는가. '절대 손해보면 안된다는 심리',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강박', '평균을 올려잡고서 평균이하의 삶은 도태라는 낙인' 들을 손에 꽉 쥐고서 이를 놓는 사람을 경쟁의 실패자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빛나언니에게 낸 것보다 더 많은 축의금을 받았다면 그걸로 행복했을까? 모든 것이 잘난 지훈이 누구나 선망하는 지유와 하룻밤 잤더라면, 지훈은 행복한 삶을 살게되는가? 계산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삶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조금은 내려놓고서 사람들을 대하고 삶을 사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도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더 나아가 내게 주어진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더 나은 방법이였음 최근에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장류진 작가는 페미니스트?

 

전반적으로 작가님이 직장에서 10년 이상 일해서인지 직장인의 애환을 잘 담았고, 그 고민들이 직장인들만이 겪는 것도 아니고, 여성들만의 전유물은 더더욱 아니기였기에, 많은 사람들 호평을 남겼다. 특히 앞부분에 실린 <잘 살겠습니다>와 <일의 기쁨과 슬픔>이 가장 재밌었고, 중간중간 당황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게서 웃음이 났다. 비판점으로는 페미니즘 색채가 담겨있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82년생 김지영>처럼 대놓고 작가가 독자들에게 중간중간 잘못된 통계로 가르치려드는 것도 아니고,  작가도 마냥 페미니즘을 표방하지는 않았기에 굳이 페미니즘 서적이라고 규정지을 필요는 없어보인다. 대한민국에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읽고 많이 공감한 책, 가볍게 읽기 좋아서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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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눈에 띄는 표지다. 핑크색과 글씨체가 매우 과할정도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니라 소녀?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에르빈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실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역학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실험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양자역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친숙하게 대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이론이다. 특히 소설,영화,만화 등 여러매체에서 이제는 단골소재로 쓰이는 상황인데, 이번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니라 슈뢰딩거의 소녀다. 이제 저 소녀도 50%의 확률로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되는 내용인 것일까?

현대 일본에서 50여년이 지난 근미래의 일본. 도쿄 대신에 도키요라고 부르고, 약자컴퓨터의 발달로 모라벡이라는 어시스턴스 ai가 보편화되었으며, 어딘가 Z월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Z감염체가 떠도는 세계. 수공예를 좋아하는 발랄하고 솜씨 좋은 구레나이는 아버지에게서 프렌드 ai를 선물 받았고, 자신과 색만 다른 옷을 똑같이 입혀주고 '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다. 표지에 나와있는 분홍색 소녀가 구레나이, 파란색 소녀가 그녀의 경호원이자 개인교사이자 비서이기도 프렌드 ai 아이인 것이다.

오늘 시부야의 감염발생확률이 80%라는 양자컴퓨터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오늘만큼은 집을 벗어나 마누스의 수공예품을 쇼핑하고 싶은 구레나이가 아이와 함께 매장에 방문하여 같은 마누스의 매니아인 할머니를 만나서 실컷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며 즐긴다. 그러다 Z감염체가 출연하였고 아이는 두 사람을 데리고 도망치면서 멋지게 감염체 세 마리를 제압하였으나, 불운하게도 같이 있던 할머니가 뒤늦게 증상이 발현되어 구레나이를 뭄으로써 구레나이를 지키는데 실패하고 만다. 아직 사람으로써 죽고 싶었던 구레나이는 아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명령하지만, 제1원칙(로봇은 인간을 해할 수 없다)에 위배되어 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아이는 교묘하게 자살을 도와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자 자살'이다. 이름 한 번 기이하다.

 

평행우주 이론을 토대로 만들어진 5D체스. 다른 평행우주의 말을 가져올 수 있다. 대신 분기가 발생한다

 

슈뢰딩거 고양이에 대한 다세계 해석은 평행우주론의 시작

아이는 다세계 해석에 따라서 1초마다 50%확률로 실탄이 발사되는 권총 방아쇠를 구레나이에게 당길 때마다, 세계는 둘로 분열된다고 말해준다. 이를 100초 동안 반복하면 총 100개의 평행우주가 만들어지고, 죽는 순간에는 관찰자인 구레나이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을 관측하는 시점의 구레나이는 살아있다고 말한다. 즉, 관측에 성공하는 세계선이 존재하므로 제1원칙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나머지 세계선에선 구레나이를 죽임으로써, 자살시켜달라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굳이 권총으로 쏘지 않아도, 오늘 시부야를 오지 않았던 세계선, 롤리타풍의 수예를 취미로 삼지 않는 세계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세계선, Z발병체가 없는 세계선 등 수없이 많은 세계선이 존재한다고 말해주고, 작가는 이 중 몇 가지 세계선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언제나 서있다. 오늘 점심은 무엇으로 먹을지, 우산을 가지고 나갈것인가와 같은 작은 선택도 있고 구레나이처럼 신주쿠에 갈지말지, 어떤 종목을 구매할지, 진로선택에서 어떤 길을 나아갈지, 이 사람과 헤어져야할지와 같은 중요한 선택들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중요한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한 것을 두고 후회하거나 좌절하거나 혹은 안도하기도 한다. 필자 또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 선택을 했더라면 우리 집이 더 나아졌을텐데와 같은 후회와 고민을 끊임없이 한 적이 있고 그러한 번뇌는 들인 시간에 비례하여 해소되지 않았다.  

 

여주인공을 살린다는 아주 낮은 확률의 세계선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

 

우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런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다세계 해석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회계사라는 시험을 고르지 않았던 세계선에서의 나는 평범하게 취업해서 그 삶에 만족했을 것이고, 코인에 손대지 않았던 세계선에서는 무난하게 수험생활을 마치고 회계사가 되어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저렇게 했어봐야 망했을 것이다 라고 신포도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해서 성공한 혹은 행복한 세계선을 사는 내가 존재하고 그것들 또한 나라고 믿는 것이다. 수많은 세계선에서 행복하게 사는 '나'들이 있으니 비단 지금의 '내'가 그렇게 불행하다고만 볼 수 없다.  마치 구레나이를 죽였지만, 살아있는 세계선이 존재하기에 제1원칙을 어겼다고 볼 수 없는 아이의 행동처럼.

반대로 미래도 가능하다. 아침에 늦잠을 잘건지 말건지, 저녁에 러닝운동을 할건지 말건지에 따라서도 분기되어 게으른 나와 부지런한 나, 살 뺀 나와 살 찐 나가 모두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작은 선택들을 선택해나가며, 마침내 마지막에는 회계사에 떨어지거나 포기하는 수많은 세계선이 아닌, 적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합격한 세계선에 도달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수년간 생긴 후회와 고민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저기서 회계사란 단어 대신에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목표로 치환해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자. 정신승리, 단순긍정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자신이 목표하는 삶에 가까워진다면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다름없다. 여러가지 가능성과 경우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고양이와 다른 점은 우리들의 여러가지 상태는 계수기와 방사선의 붕괴확률(50%)에 따라서 관측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발생하는 작은 분기들을 선택하는 우리들의 행동, 의지, 결정에 따라서 확률이 정해지고, 직접 관측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아이가 말했듯이 자신을 관측하는 시점의 나는 살아있다(=달성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의외(?)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보다 앞선 영조의 세자실험

 

이과적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다룬 SF 디스토피아 단편집

오늘 이야기한 것은 '슈뢰딩거의 소녀' 였지만, 이 책은 마쓰자키 유리 작가의 총 6개의 단편모음집이다. 근의 공식만 외우고 수학을 싫어하는 수포자의 이세계탈출기 '이세계 수학'과 65세에 모든 인류가 죽는 세상에서 64세 할머니와 소녀의 우정을 그린 '예순다섯 데스'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오히려 순수재미로만 따진다면 이 쪽이 더 높았고, 나머지 이야기들도 대체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다만 마지막의 '펜로즈의 처녀'는 다소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심층있게 이론을 다루기보다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재미난 SF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데에 집중했으므로, 이과적 단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너무 화려한 책표지에 위화감을 느끼지 말고 꼭 집어서 보자. 하루가 아깝지 않을만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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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고 이별하기까지의 시간

종로 한복판에서 누군가 나의 뒤통수를 치고 노려본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경찰에 신고하거나 같이 뒤통수를 때려준다던가 할 수 있겠지만, 만일 여성이고, 회사에 지각할 위기에 처했다면 미친사람인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 은소는 다급한 출근길에 낯선 여성에게 뒤통수를 맞지만 지각할 상황이라 때린 사람에게 뭐라하지 못한채 회사로 간다. 도대체 누구길래,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에 그것도 두번씩이나 때렸을까를 생각하다가 어릴 적 친구였던 원화를 떠올리게 된다. 과거의 일을 되짚어보면서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게 되고 자신의 선의가 실은 우월감에서 비롯된 연민이였음을 자각한다. 이어서 지금의 남자친구 또한 사랑이 아닌 연민의 감정이었음을 깨닫고 청혼까지 받았던 남자친구와 이별하게 된다. 

작가의 실제경험을 모티브로 삼아서 참으로 황당했던 초반부였지만, 후반부를 거듭할수록 선의, 도덕적 우월감 등 현 대한민국에 첨예한 갈등으로 부각되는 소재에 대한 성찰을 담았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사람은 착해야한다, 선해야한다는 도덕적 규범정도는 원래도 있었으나, 지난 5년의 정부가 도덕적 우월감, 정의, 공정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출범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사람들이 해당 가치들에 집착하지 않았나 회고한다.

 

선한 영향력을 포방하던 사회실험채널 '일미터', 뒷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돈벌이로 소모되는 가난, 장애, 여아

어린 남매로 보이는 학생들이 곱창집에 들어가 주문을 한다. 그런데 돈이 모자른지 음식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으려하자, 착한 사장님이 와서 음식과 음료를 주고 심지어 포장으로 더 주기까지 한다. 사기/횡령 범죄 1위 국가에 살다보니 더이상 이러한 선행이 선행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의문점만 남는다. 가난한데 왜 비싼 곱창집을? 가게내부부터 카메라구도까지 미리 짜고친 쇼가 아닐까? 이러한 의문점 때문에 해당채널은 뒷광고 저격을 맞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뒷광고는 아니였기에 수많은 저격영상들은 내려갔다. 그러나 채널측의 해명은 사장도 알지못한 몰카라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너무나 많았고, 다른 사회실험채널들은 뒷광고로 밝혀졌기에 사람들의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며, 숨긴태그로 해당 영상에서 나오지 않는 '할머니, 병원, 택배기사, 임산부, 사고, 다침' 등의 자극적인 단어들을 오직 조회수 돈벌이를 위해 사용된 것이 들통나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결국 채널의 원본영상과 해명영상들 전부 내려갔다.

동물원의 구경거리로 쓰인 소재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해당 채널을 비판했으나, 채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사람들을 그저 테러하는 나쁜 무리 정도로만 치부하며 오히려 채널 주인을 응원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선한 영향력에 환호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 본인들의 목소리는 쓰레기, 일베충, 인간이하의 것들로 치부하는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채널을 비판하는 사람들, 온갖 쌍욕도배하는 사람들, 채널을 옹호하다 못해 용서까지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응원댓글 말고는 전부 삭제하느라 바쁜 채널까지. 정말 가관이 따로 없던 댓글창을 저장하지 못해 아쉬울 정도였다.

 

사회실험, 감동카메라 같은 장애전시 영상들을 비판하는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

 

 

누구를 위한 선의인가

"사실 오원화에 대한 정은소의 선의는 처음부터 악의로의 변이가능성을 품은 것이었다. 상대에 비해 우월한 자기라는 것을 항상 확인하고자 하는 자아의 기본 욕구를 타인의 환대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감에 내어주는 일은 우선 양심에서 오는 죄책감을 벗어던지게 하며 사혜적 우쭐함이라는 심리적 보상을 제공해주고 일정하게 정체성의 보존을 가능케 하는 동안은 어느 정도 기꺼운 것일 수 있다."
-오양진, 작품해설 중에서

우리는 어릴 적 도덕시간에 배웠던 가르침이 생각난다. 가난, 장애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그들의 요청이 있지 않는 한 함부로 돕지 말아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이란 인식이다. 그들에게 가장 많은 아픔을 주는 것은 장애나 가난이 아니라 그들을 연민과 동정으로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이다. 따라서 그들의 장애, 가난, 아픔을 전시해서 돈을 버는 행위는 결코해서는 안 될 행위이며 그 행위를 선의, 선항 영향력, 정의 따위의 위선으로 점철해서도 안된다.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네요' '가슴 따뜻해지는 영상 정말 고맙습니다' '와 저 분 완전 이 시대의 살아있는 영웅!' '이런 착한 가게는 돈쭐내줘야죠! 어디인가요?' 등 이 따위로 그들의 아픔을 오락, 감동으로 소모하는 언행들은 당사자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잔인한 짓임을 명심해야한다. 

 

이런 영상들은 결코 선한 영향력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조회수 돈을 위한 것

 

 

진정한 선의는 대가없는 선의뿐

해당 채널은 이미 5개월 전에 복귀했으며 벌써 46개의 영상을 올렸다. 메인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여아2(생리통1 포함), 아이13(한부모1 포함), 여자4(스토킹1, 생리대1 포함), 군인2, 외국인2, 임산부4, 노인3(치매1, 보이스피싱1, 폐지1 포함), 장애4(공황, 휠체어, 기억상실, 시각), 배달기사1, 미성년자2 이다. 영상 대부분이 약자라고 분류될 법한 단어와 제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해당 채널은 3일당 1개씩 이런 영상을 쏟아내고 있으며 숏츠를 포함하면 그 주기는 더 짧아진다. 그리고 댓글창 역시 그대로다. 감동이니, 좋은 영상이니 자기들끼리 추켜세우고 뭉쿨해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생각이 잘못된건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작가는 출간인터뷰에서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사실은 '나는 이렇게 착한 사람이야'라는 차별주의자의 자기 위안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PC주의가 창궐하여 도덕적으로 올바름을 강요하고, 약자는 무조건 도와야한다고 세뇌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또다른 '은소'처럼 우월감과 연민으로 남을 돕는 것은 아닌지, '일미터' 같은 약자포르노를 소비하며 약자들을 동물원의 구경거리처럼 여기지는 않는지, 작가의 말대로 차별주의자이지만 위선을 행하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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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번 읽긴 읽어야겠는데 막상 읽자니 뭘 읽을지 고민되는 당신을 위해 읽을만한 책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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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지옥같던 시기에 누군가는 베스트셀러 책을 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한강이 21년에 쓴 소설을 해가 지나고 수 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만났다. 한강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18년 한국현대문학 수업에서 교수님의 소개였다. <채식주의자>로 시작한 그녀의 3부작에 흠뻑 빠져서 탐독했던 지난 날들이 기억난다. 게다가 영화 <채식주의자>는 거의 소설을 읽으며 떠올리던 모습이 그대로 나와서, 주인공이 가족들에게 채식을 소리치던 장면은 참 잊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읽던 책도 과거의 기억에서 느꼈던 흥미와 흡입력을 기대했다. 그치만 이번 작품은 아니였다. 

 

 

이번 책의 줄거리는 사실 매우 간단하다. 탈고 이후 슬럼프를 겪으며 자살을 생각하던 소설가 경하가 오랜 친구이자 사진가이며 목수이기도 한 인선의 전화를 받고, 손가락이 절단된 그녀의 부탁대로 그녀 집의 앵무새에게 물을 주러 갔다가 4.3사건의 진상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난해한 꿈의 묘사에서부터 절단된 손가락을 붙히기 위한 모습까지. 그야말로 난해하며 복잡한 주인공의 방어기제를 쓰던 작가답게 어지러우면서도 흡입하게 만드는 필력은 여전하다고 느꼈다. 그치만 중간부터 4.3사건에 대한 진상을 인터뷰로 풀어갈 때부터 조금은 뜬금없었다. 

소설책 내의 등장인물인 인선은 단편영화를 만들고 그에 대한 호평으로 지원금을 받고 다음 단편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반복한다. 처음은 베트남에 있는 성폭력 생존자들을 인터뷰했고, 두번째는 1940년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한 할머니의 일상을 담았다. 둘 다 역사 속의 희생자들과 잔혹하리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영화였다. 사람들은 세번째 작품도 이와 유사한 계열의 영화를 기대했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인터뷰했고 이는 기존방식과도 매우 달라서 사람들에게 당혹감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2부에 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4.3사건에 대한 인물들의 기억이 회상될 때, 내가 느낀 당혹감이 아마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제주도 인구 1/10이 죽은 제주4.3

 

잔혹의 역사

확실히 기존의 작품들보다는 재미가 없었고, 소설 내용의 1부보단 2부가 조금 지루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전체적으로 별로였다는 것은 아니였다. 당혹감이 미처 사라지지 않은 2부 초반을 제외하고는 피해자들의 시점에서 읽는 4.3사건의 잔혹함과 그 참상은 결코 눈을 돌릴 수 없는 기억들의 연속이였다. 징병 당할까 두려워 동굴로 숨었던 아들이 총소리에 놀라 집으로 돌아오니 온가족이 총살당한 이야기, 뜀박질이 빠르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 아들이 턱에 구멍이 뚫린 것을 보고 손가락을 찢어 아이의 입에 피를 흘려넣는 이야기 등. 5.18 광주항쟁 또한 잔혹한 역사이나 그건 저항의 과정이였기에 숭고하게 느껴졌지만 제주4.3은 일방적인 학살이였기에 숭고함 대신 마음만 찢어지게 아팠다. 남로당 사람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빨갱이의 가족이란 이유로, 집안 남성이 부재중이란 이유로, 그 외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감옥에 갇히고. 총살당하고. 갱도에 갖혀 죽었으니 슬프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제주도와 인연없던 연예인이 제주도에 살아가면서 종국엔 4.3 추념식 낭독까지

 

계속되는 기억

인선은 자신의 엄마가 조사하고 수집해오던 4.3사건의 빈자리들을 채워넣으며 이어갔고, 죽었을 앵무새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인선을 통해서 4.3사건을 들은 경하가 인선을 대신하여 4.3사건의 진상을 알리게 된다. 경하의 그런 장면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다만, 경하의 직업이 소설가이고 슬럼프 전에 쓴 소설이 5.18에 관한 <소년이 온다>일 것이라고 유추한 결과, 경하의 모티브인 작가 한강이 이 책을 집필함으로써 책 속의 경하 또한 마찬가지로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에게 4.3사건이란 그저 군부시절에 벌어진 역사들 중 하나일 뿐, 그 이상의 가치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이후론 제주4.3은 물론 지난날 단순히 암기로만 외웠던 사건들이 살갗까지는 아니여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하는 역사임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읽었던 수 많은 독자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작별하지 않는다> 경하와 인선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주4.3사건을, 그 진상을 선명히 각인시켜준 작가 한강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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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번 읽긴 읽어야겠는데 막상 읽자니 뭘 읽을지 고민되는 당신을 위해 읽을만한 책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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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pic of Gilgamesh

 

신화(神話, myth)는 한 나라 혹은 한 민족, 한 문명권으로부터 전승되어 과거에는 종교였으나, 더 이상 섬김을 받지 않는 종교를 뜻한다. 위키백과에 나와있는 신화의 한 줄 뜻이다. 좀 더 내리면 단편의 이야기인 전설과는 달리 종교의 체계로서 문학, 예술, 민족성 등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 모든 나라에 신화가 있으며 한국 또한 단군왕검이란 신화가 있다. 그렇다면 가장 최초의 신화는 어디일까?

최초의 신화는 역시 최초의 4대문명인 황하지역(황하 강), 인더스지역(인더스 강), 이집트지역(나일 강), 메소포타미아지역(유프라테스강)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동서양이 만나는 지점으로 다툼이나 갈등이 가장 먼저 나타났고 현재도 가장 많은 중동지역이자 한 때는 수메르 지역이였던 이 곳에서 최초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가 유래되었다. 게다가 보통 신화는 서사시가 좀처럼 없어 더더욱 특별한 신화다.

이 책의 서문은 처음보는 유형이여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보통은 이 책을 내는데 어떠한 도움들을 받았고 그런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 이야기는 @@에 관한 이야기로 어떠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하기를 고대한다 식의 짧은 서문이 대부분인데, 이 책의 저자 앤드류 조지는 달랐다. 현재 길가메시 서사시의 출토현황이나 번역율, 앞으로의 발굴전망과 번역계획, 그동안 번역을 같이 해온 동료교수들에 대한 언급, 당시 수메르 시의 엄격한 규칙, 길가메시 서사시의 의의 등이 써져있다.  

 

 

심연 속 괴몰과 이를 공격하는 길가메시

 

생소한 서문을 뒤로하고 저자가 극찬하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크게 세 가지 플롯으로 나뉜다. 엔키두를 만나기 전 폭군으로서의 길가메시. 엔키두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영웅으로서의 길가메시. 엔키두의 죽음 이후 영생에 집착하다 끝내 답을 얻는 지혜자로서의 길가메시. 서사시의 첫부분이 엔키두의 탄생이기에 엔키두를 만나서 친구가 되기 전까지의 폭군 길가메시 분량은 짧고, 우르크의 영웅이야기를 담은 부분이 대부분이고, 영생을 쫒는 이야기 역시 짧다. 필자가 주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세번째 플롯이므로 첫번째와 두번째 플롯에 대한 짤막한 줄거리는 짚고 넘어가려한다.

 

 

초야권, 말 그대로 첫날 밤에 대한 권리다

 

길가메시는 수메르 남부의 도시국가 우르크의 폭군이였다. 폭군으로서의 면모는 자세하지 않지만 초야권 행사를 계기로 엔키두와 대면하는 장면만이 남아있다. 다른 모습들은 볼 수 없으나 첫날밤을 빼앗가는 것만으로 그의 권력이 대단했고 이를 당연시 여기던 사람들의 행태에서 일종의 종교처럼 대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유일한 벗 엔키두와 영웅 길가메시

 

본래 길가메시를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신들이 만들어낸 엔키두는 야생에서 자라다가 지나가던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고서 그의 도움(창녀를 통해 성욕을 일깨우고 사람임을 자각하게 만듬)으로 도시국가 우르크에 입성한다. 그 이후 초야권을 행사하는 길가메시에게 분개하여 싸웠으나 패배. 그러나 지금껏 동급의 실력자가 없었던 길가메시에게 자신과 비견되는 엔키두는 무척 반가운 존재였고 이를 계기로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된다.

 

 

추억의 게임 아발론. 훔바바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만들었다

 

그 둘은 삼나무 숲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괴물인 훔바바를 쓰러뜨린다. 그렇게 폭군에서 영웅으로 바뀌는 길가메시의 모습에 지배욕이 발동한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를 유혹하지만 길가메시는 그녀의 명을 따른 남자, 동물, 식물들이 어떻게 처참한 말로를 겪었는 지를 언급하며 단칼에 거절했고 이에 분개한 이슈타르가 아버지인 아누에게 부탁하여 하늘의 황소를 내려 길가메시를 죽여달라한다. 결국 하늘의 황소가 내려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나 이 역시 둘이 힘을 합쳐 죽인다. 신들의 보복까지 이겨낸 길가메시는 신들이 더이상 무섭지 않을 정도였다.

 

 

길가메시의 불로초를 훔쳐가는 뱀의 모습

 

그러나 황소를 죽여 신들을 분노케한 대가로 엔키두가 철저히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영원하고 평생 같이할 줄 알았던 친구인 엔키두가 한순간에 병들고 고통 속에 죽는 것을 보고서 길가메시는 처음으로 공포, 두려움에 휩싸여 영생을 갈구하게 된다. 영생을 위한 여정 중에 대홍수의 생존자 우타나피쉬티에게서 영생의 비밀을 듣는다. 그것은 바로 불로초. 풀을 어렵게 구한 길가메시가 긴장이 풀려 연못에서 목욕하는 사이, 범이 불로초를 가지고 도망가면서 그의 여행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것이 현재 2020년 가장 많이 번역된 길가메시 서사시 대략적인 줄거리다.

 

 

문명6에 등장한 길가메시. 가장 원형과 닮았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표적인 의의는 영웅들의 서사에 관한 원형(原型)을 정립했다는 점이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특별한 태생을 가지며, 시련과 고난을 겪지만 이를 극복하여 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많은 영웅 이야기들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이런 플롯에서 크게 바뀌지 않기에 최초의 영웅서사였던 길가메시 서사시가 더 가치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필자가 좀 더 중점을 두고 생각한 것들은 시련과 실패였다. 길가메시는 하늘의 황소라는 시련을 이겨내어 영웅으로서의 위상을 떨치기도 했고, 죽음이라는 공포를 극복하려했으나 불로초를 잃어버리며 실패했다. 대신 뱃사공에게 바빌로니아의 벽돌을 보라하면서 불멸의 인간사회를 만들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돌에 새겨 후대에 전달하고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죽음이란 시련은 극복하지 못했으나, 그의 다짐대로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부흥하면서 불멸자가 아닌 필멸자로서 영생을 달성한 셈이다.

 

 

길가메시를 재해석하여 만든 'Fate의 길가메시'

 

우리는 영웅이 아니지만 영웅서사마냥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필자 또한 이제는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죽음의 고난에서부터 누구에게도 쉽사리 말할 수 없는 탐욕의 실현과 일련의 자아혐오까지 많은 어려움을 마주했고 어떤 것들은 극복했으며 어떤 것들은 실패하다못해 인생의 일부를 송두리째로 넘겨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사람들은 실패를 더더욱 두려워한다. 물론 시대가 지남에 따라 실패를 했을 때의 기회비용들이 커졌고, 계층간의 격차 또한 심화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사람들은 고난을 꺼려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시련에 좌절한 몸을 쉽게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고난이 우리를 빗겨가는가? 시련이 해결되는가? 실패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영웅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고난과 시련에 반드시 직면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성공하기도 하나 그 중 일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최초인 영웅마저 실패하는데 범인인 우리라고 다르겠는가? 범인과 비범인을 가르는 기준은 시련극복 여부가 아니라 실패 후 일어서는가에 달려있다. 실패는 반드시 찾아온다. 이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자아를 성숙하게 만들지 고민해야한다. 필자의 고민끝에 나온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였다. 도저히 어떤 계기나 정신적인 각성으로는 실패한 현상을 마주보지 못했고 물에 젖어 굳어버린 자기혐오를 원래처럼 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되려 포기했다. 해당 시련을 극복하고나서 사람들을 보는 것 대신에 시련실패를 인정하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금의환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 대신에 있는 사실 전부를 알리고 괴사처럼 갉아먹는 실패를 잘라내기위해 돌아갔다.

 

 

배우 마동석이 연기하며, 이터널스에 나오는 길가메시

 

이런 변화를 겪고나니 허망했다. 처음부터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더라면 이리 오랜 시간을 잡아먹히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살기위해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고 게으른 나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한 순간의 충동을 조금씩은 이겨보려고 노력한다. 전역하고 난 뒤에 생기는 자신감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고양된 결과물이였다면, 시련을 겪어본 뒤에 생기는 이 자신감은 또다른 고난을 실패하더라도 이전처럼 오래 쓰러져 있지 않을 것이란 의지에서 비롯된 결과물일 것이다. 이 또한 뱀의 허물벗는 과정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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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번 읽긴 읽어야겠는데 막상 읽자니 뭘 읽을지 고민되는 당신을 위해 읽을만한 책들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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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는 기존역사적 사실에 픽션요소를 가미하여 만드는 역사픽션소설의 대가입니다. 보통 다작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어느정도 공통된 문체나 비슷한 전개방식이 이어져서 쉽게 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말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시 전부 비슷비슷한 뉴에이지 느낌이 강해서 질타를 받는 경우도 많고, 로맨스소설 작가인 기욤 뮈소 역시 여러 권을 읽을수록 진부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김진명 작가의 작품들 또한 사건의 미스테리를 찾아가는 주인공, 휙휙 지나가는 빠른 사건전개 등 여러가지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을 뛰어넘는 독특한 소재선정과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나타나는 서사적 필력때문에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특히 그의 서사적 필력은 역사물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구려>가 이를 반증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구려>는 미천왕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까지의 이야기로 1~3권은 미천왕, 4~5권은 고국원왕의 이야기이고 이제 소수림왕이 나오는 6권이 출시된 상태입니다. 고구려 나라에는 이미 드라마화되고 알려진 왕들이 많습니다. 동명성왕인 주몽을 시작으로 광개토왕, 장수왕, 연개소문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 네 명의 왕은 고구려의 전성기인 광개토대왕이 전 왕들로 일찍이 고구려가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게 기반을 닦아왔지만 광개토대왕의 업적에 가려져 알려지지 못하고 크게 관심받지 못한 왕들입니다. 그래서 김진명 작가는 일부러 많이 알려지고 업적이 많은 왕들 대신 그러한 왕들이 빛날 수 있도록 발판을 다져온 왕들을 다루기로 한 것입니다. 



고사유 - 백성을 한없이 사랑했으나 한없이 외면받은 사람


폭군 봉상왕으로부터 고구려를 되찾아 한사군을 폐지하고 주변을 평정했던 미천왕-고을불의 이야기도 무척 재밌지만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뛰어나고 호전적인 아버지와는 달리 소극적이고 여린 마음을 가졌던 고사유, 고국원왕입니다. 


고구려는 호전적인 민족으로 미천왕 시절 연과 한사군을 비롯해 주변을 평정하자 갈등이 있을때마다 힘으로 해결하려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달리 고국원왕은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고 화친을 하면서 전쟁을 최대한 피합니다. 심지어 이길 수 있는 전쟁에 항복하면서까지 말이죠. 그는 전쟁에서 이겨도 그 피해와 죽음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임을 알았던 까닭입니다. 


그 백성하나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왕후와 태후를 볼모로 보내면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뜻은 백성도, 대신도 그리고 아내마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직 그의 아들만이 그의 뜻을 어렴풋이 알 뿐입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을 했으나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참으로 비극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의 백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만 명의 백성을 지킨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고구려> 5권 중 고국원왕의 말 


백제의 전성기인 근초고왕이 고구려에 와서 자신을 배반하고 고구려로 망명한 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내놓으면 후퇴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쟁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질 것 같은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왕 몰래 조정이 이를 받아드려 그 백성 하나 보낸 것을 알았을 때, 외친 고국원왕의 대사입니다. 고국원왕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였죠. 고국원왕은 그대로 진노하여 싸움 한 번 안해 본 그가 외로히 돌격하다가 죽음을 맞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왕이 싸움을 피하는 겁쟁이가 아니라 그저 백성만을 생각한 왕임을 알게됩니다. 그렇게 한평생 외면받으며 걸어온 외길을 그가 죽고난 후에 알아주고 인정하기 시작하니, 비록 역사적 픽션일지라도 무척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국원왕 - 참으로 전쟁을 그만두려 한 자


고사유의 선택에 작가는 이런 평을 붙였습니다. '두 사람을 서로 때리는 형벌 중에서 다들 때리고 그만두려 할 때 고사유는 맞으면서 그만두려하니 참으로 전쟁을 끝내려는 자이다'는 묘사가 있습니다. 대부분 대인관계에 있어서 누구나 손해보려 하지않습니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고 그렇기에 점점 개인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시대상의 변화이자 인간의 본성이기에 이러한 행위나 동기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오히려 양보하는 고사유의 넓은 아량이 더욱 돋보일 뿐입니다.


역사적 픽션으로 리더란 어떤 덕목을 가지고 이상의 정치를 실현해야하는지를 말해준 <고구려>, 치국을 꿈꾸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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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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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민들에 가장 인기있는 고전문학 작가를 뽑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1위에는 햄릿, 2위에는 제인 오스틴이 뽑혔는데 이는 <오만과 편견> 덕분일겁니다.

<오만과 편견>에는 매력적인 남녀들이 등장합니다. 전통적인 미덕을 갖춘 여성상인 맏언니 제인,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영문학의 가장 사랑스런 딸인 둘째 엘리자베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다버리는 남자 다아시, 대조적으로 오만과 편견을 가진 인물로 나타나는 캐서린 영부인.

엘리자베스는 언니 제인과는 다르게 지력, 재치 등 현대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인물로 나름의 분별력도 있지만 잘못된 전제와 편견 때문에 다아시를 증오합니다. 오만과 편견 중 편견은 곧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의미합니다. 그녀가 인기있던 이유는 말을 재치있게 잘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박웃음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

많은 가수들의 주제가 '사랑'인 것은 그것이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인기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남녀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것도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결점과 주변사람들의 방애, 시대상의 제약 등 고난과 시련을 넘어서 쟁취한 사랑, 연애과정이였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 서로를 보며 경멸하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점차 변하여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떠올리면 훈훈한 미소가 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의 뼈있는 풍자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풍자도 재밌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크고 주된 풍자는 당시 시대의 여성현실에 관한 것입니다.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기본적으로 '신데렐라적인 플롯'에 맞춰져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여성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남자에게 의존하여, 좋은 신랑감을 잡는 법밖에 없는 현실, 즉 여성의 가치가 낮게 평가받고 인정하지도 않는 전통주의적 가치관을 나타내었습니다. 사랑과 조건 중에서 사랑을 선택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리디아와 현실적인 삶에서 도움이 되는 조건을 선택하여 사랑하지도 않는 결혼을 하는 샬럿의 대조를 통해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 두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경제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에 사랑과 조건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여성이 처한 실상이 바로 2차적인 풍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이미 여러 드라마와 영화가 있을 정도로 영국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작품입니다. 문학의 나라, 영국에서 인기있는 소설 <오만과 편견>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전 심지어 제인보다도 더 행복해요. 

언니는 미소짓기만 하지만, 전 함박 웃으니까요

<오만과 편견> 중 엘리자베스 베넷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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