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ync="async"> ',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책 알려주는 남자 :: <미스 함무라비> 등단하지 않은 가짜작가의 한계

공부에 집중이 안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도서관 라운지에 있는 아무 책이나 꼽아들어서 읽은 것이 벌써 네 번째인데, 이 중 세 번이 페미니즘이 연관되어있다. 새삼 페미니즘이 얼마나 우리 일상에 침투해왔는지, 그리고 권력과 결부하면 일개 잡스러운 사상도 얼마나 강한 파급력을 갖는지 깨닫게 된다. 오늘 리뷰할 책은 <미스 함무라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을 읽고나면, 저번주에 읽었던 장류진, 정세랑의 단편집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등단한 작가만이 진정한 작가임을 알려주는 좋은 교보재이기 때문이다.

 

등단한 진짜작가와 등단하지 못한 가짜작가의 차이
아이스크림으로 비유를 해보자. 장류진의 소설은 불쾌한 향이 첨가된 구슬 아이스크림이다. 이따금씩 흠칫하게 만드는 향이 나지만, 괜찮다. 아이스크림 맛 자체는 문제없이 맛있다. 먹기 쉬워서 금방 그릇을 비웠다. 정세랑의 소설은 여러맛이 담긴 하드아이스크림이다. 민트맛이 강한 호불호가 있고, 녹으면 손에 달라붙어 찝찝하지만 못 먹을정도는 아니다. 민트맛말고도 다른 딸기맛, 초코맛도 조금 섞여있어서 참고 먹을만했다. 딸기맛은 의외로 꽤나 훌륭하다. 그렇다면 우리 문우석의 소설은 어떨까. 이건 형형색색의 색종이를 원형으로 구겨서 아이스크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당연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고, 씹을수록 맛없는 종이를 질겅이다 뱉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애초에 이건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등단하지 않은 작가가 쓴 글은 그만큼 등단한 작가가 쓴 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등단하지도 않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정말 보기 드물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등단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소설의 기본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고, 보편적으로 인식된 재미라는 것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발현시킬 수 있는 실력이나 자신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무언가를 사람들에게서 설득하는 언어력이 필요하다. 재미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은 위의 실력과 더불어서 여러가지 재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정말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은 읽는 독자에게 있어서 평생 그 순간과 글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동기 혹은 추억이 된다. 

 

또 너야? JTBC?

 

좋은 작품이 드라마화 되지 않는다. 수요를 맞춘 작품이 드라마화된다
그렇지만, 어디 좋은 책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인가? 등단한 작가들도 좋은 책을 쓰기가 어려운데, 이젠 등단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본인을 작가라고 자칭타칭하면서 양산형 글을 쏟아내고, 너무 좋은 책이랍시고 드라마화하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색종이로 구긴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이라고 우기고, 소설의 본질인 재미와 감동보다는 사상에 초점을 맞췄으면서 이건 소설책이요, 이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착하고 좋은 책이요, 드라마화까지 된 대단한 원작이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우리편이기만 하면, 책 자체를 읽어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너무 재밌어요 홍보하고, 띄워주고, 비판리뷰는 나쁜 놈으로 몰아간다. 굳이 책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전반이 그런 확증편향과 사상중심의 팬덤문화가 주를 이룬지 꽤 되었다.

 

이 책이 드라마화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런 한심한 현상의 방증이기도 하다. 이 책은 385p로 꽤 짧지 않으나, 단 11p만에 페미니즘 냄새가 너무 역해서 앞 머릿말을 찾아봤다. 그 다음 작가 이름을 구글에 쳐봤고, 거기서 페미니즘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유명한 남페미니스트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역작, 김규삼의 <비질란테>의 드라마를 맡으신 각본가셨다. 작품을 망친 범인이 멀리있지 않았다. 등단하지도 않은 사람이 각본가로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건 회계사 시험 합격도 안하고서 회계감사 맡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광기의 시대에서 나온 것이 <미스 함무라비>를 비롯한 수많은 페미니즘 소설들. 덕분에 수요층만 맞으면 수준미달의 글들도 베스트셀러가 가능했던 시대

 

남녀이분법과 부자연스러운 글의 흐름 
초임여성판사의 유쾌한 법정활극이라는 <미스 함무라비>에는 이미 헌법 위에 군림하는 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권여징남이다. 모든 남자는 가해자, 가해자가 아니라면 구태문화를 강요하는 꼰대나 남의 공적을 가로채는 인간 등으로 표현하여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나쁜 사람들이며, 반면 모든 여자는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아니라면 구태문화를 타파하는 개혁가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의 수호자이고, 가난이나 성적 협박에서 하루하루 지옥처럼 살아가는 연민을 지어내는 자이다.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좋은 사람들,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참으로 기괴한 구성이지만, 페미니즘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 부자연스러움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이 부자연스러움을 오히려 잘 썼다고 말한다. 저번에도 썼지만, <슈뢰딩거의 소녀> 단편집 대부분은 여성주인공이지만 이에 이상함을 느낄 수 없다. 남성에 대한 혐오가 없고, 작위적이지 않은 설정과 상황때문이다. 11p만에 뜬금없이 체구작은 여성경위를 설명하면서 작은 여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니 어쩐다니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있는건 정말 작위적이였다. 최소한 누군가 저 여성경위에게 뭐라고 하는 장면을 넣고서 저런 설명을 넣어야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작가의 하고싶은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글의 문맥을 무시한 채 다이렉트로 등장인물을 통해 나오고 있다. 100% 단언컨대 이 소설은 절대로 등단할 수 없다.

 

 

등장인물은 작가의 지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돋보이는 주인공을 만들 능력이 없는 작가는 주변인물을 전부 저능아로 만들어버린다.

 

 

등단하지 못한 가짜작가의 한계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재밌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고민, 갈등, 서사들을 주변 인물들과 관계하면서 자연히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는 인물들이 지나가는 길에 이정표를 세우고, 적절한 장애물들을 배치하기만 하면, 재밌는 한 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치만 이런 <미스 함무라비> <82년생 김지영>처럼 캐릭터들을 제한하면 어떻게 되느냐. 머릿속에서 이미 답을 정해놓고 가는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끌어가는 힘이 전혀 없다. 잘 짜여진 설정과 세계 속에 인물을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작가들이 인물들을 떠밀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남자성추행범을 멋지게 잡아내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하고 박차오름을 지하철 안으로 밀어놓는다. 그 다음은 폐쇄적인 구조문화를 타파하는 당돌한 여성을 보여주고 싶으니, 한부장은 꽉막힌 전형적인 꼰대로 설정하고 이에 윽박지르라고 부장실에 또 밀어놓고, 그 다음은 또 법정소설이니까 연민을 자극하는 한부모 어머니와 이를 괴롭히고 욕심많은 나쁜 남사장을 공명정대하게 가려내는 모습을 담으려고 법정으로 밀어놓고,,,그냥 이야기 전개가 이런 식이다. 인과관계나 특정서사, 기승전결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여성의 멋있는 장면들을 촬영하기 위해서 그 때마다 박차오름이란 배우를 들이미는 방식. 매끄럽지 못한 이음부나 자잘한 설정오류는 상관없다. 어짜피 옴니버스식이니까 하고 대충 넘어가는 방식.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고통을 참고서 읽어봤지만, 이게 전부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자들이 받았다던 그 수많은 차별을 강조하고 억울함을 표현하고자 모든 갈등에 여주인공을 밀어넣어서, 종국엔 도대체 82년생 여자가 왜 할머니들이 받았던 차별을 겪는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차별과 고통을 당하게 되는게 물리적으로 말이되냐 비판을 듣는 것처럼, <미스 함무라비>도 그냥 멋있고 정의로운 여성의 모습과 찌질하고 범죄저지르고 꽉막힌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주인공이 내용만 조금씩 다르고 똑같은 구조의 순회공연을 무한히 돈다. 이건 더이상 소설이 아니다. 그냥 작가의 지능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이 작가의 사상을 그대로 배설하는 연극이고, 사상이 쉴 새 없이 주입되는 고문기계다. 그것도 지독하게 재미가 없는.

 

진짜 박치기 공룡, 파키케팔로사우르스

 

 

이렇게 글이 재미없는 이유는 뭘까? 당연하지만, 등단한 진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기본적인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오류도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나 글의 자연스러움도 뒷전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작가의 사상전파를 제1순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지극히 작위적인 연출의 연속이고, 정상인으로써는 억지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만이 존재한다. 적어도 장류진과 정세랑의 페미니즘 색채가 담긴 단편들은 이야기가 어느정도 진행되고, 설정과 내용의 끝맺음이 확실한 단편 즉, 소설이 맞았다. 페미니즘의 요소를 넣다보니 조금의 핍진성,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용납못할 수준이 전혀 아니였다. 그치만 우리의 <미스 함무라비>는 아니다. 모든 것을 공명정대하고 능력있는 신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독 모든 사건은 주인공에게서 나오고, 심지어 그 모든 갈등을 회피하지않고 전부 들이박아버리는 박치기공룡이 되었다. 평범한 정상인이라면 연이은 갈등의 연속에서 지친다거나 어떤 변화나 계기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서 나아간다던가 할텐데, 그냥 체력이 무한한 기계처럼, 어떠한 고뇌도 내적갈등도 없는 완벽한 소시오패스처럼 무한히 굴레를 반복한다. 그녀가 하는 유일한 행동은 여자피해자에게 공감해서 눈물 흘리거나, 남성 가해자,권력자에게 소리 치는 것.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건 더이상 소설이 아니다. 페미니즘패널로 한 목소리 내자니 토론에서 다른 방송인, 정치인 패널들에게 얻어맞는 것이 두렵고, 그렇다고 인정욕구를 포기할 순 없으니 시대와 팬덤에 편승해서 나온 욕구해소용 부산물이다. 그것도 지독하게 유치한.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은 한 단원마다 중간에 끼어있는 부분마저 심각한 오류와 통계를 늘어놔서 모든 파트가 수준미달이였다.다. 그래도 <미스 함무라비>는 한 단원마다 중간에 끼여있는 법조인들만이 알 수 있는 법조계 이야기나 오해와 편견들은 오히려 괜찮았다. 덕분에 최악의 소설은 면했다. 특정사건 관련이야기, 오판에 대한 판사들의 고뇌 등 이런 쪽이 작위적이지도 않고, 당연한거지만 현실의 이야기였다보니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만약 이 파트가 없었고, 내용이 본편만으로 이루어졌었다면 아마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드라마나 영화의 법조인만 사람들이 알고 있지, 현실의 법조인들이 어떤 갈등과 사건을 겪는지는 대중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이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관련 책을 내보시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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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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