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ync="async"> ',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책 알려주는 남자 :: '2024/09/28 글 목록

 

'OOO 죽이기' 이보다 더 자극적인 책이름이 있을까?

책의 제목으로 이만큼 자극적인 것이 없다. OOO 죽이기를 처음 본 것은 고향에 있는 낡고 작은 도서관에서 봤던 '김대중 죽이기'가 처음이였다. 대충 차례와 목차를 보니, 김대중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오해(해당 책의 작가의 말에 따르면)와 박정희 정권에서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사건 등을 다루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어릴 때라 큰 관심이 생기지 않아 바로 다시 넣어두었는데, 그 옆에는 '김대중 살리기'도 있었다는게 기억에 남는다. 살리기는 좀 다른 내용이 있었을까? 아무튼 'OOO 죽이기'란 제목은 그만큼 어린 시절 수많은 책 속에서 문득 지나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제목이고, <상실의 시대>, <1Q84>도 지나친 필자가 드디어 하루키의 책을 집게 만드는, 호기심을 당기게 만드는 작품명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선택이였고, 근래에 읽었던 소설같지도 않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한 기억마저도 깨끗하게 지워버릴만큼 <기사단장 죽이기>는 강렬하고 흡입력이 엄청난 작품이였다.

책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초상화 전문화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인공 '나'는 어느날 아내 '유즈'에게서 이혼 통보를 받는다. 정확한 사유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집을 나가려던 아내를 만류하고 대신 집을 비우고 생업을 내팽긴채 몇달 간 여행을 다닌다. 그리고 지음인 친구 '아마다 마사히코'에게서 동네의 그림교실 수업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과 전설적인 화가 '아마다 도미히코'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산 중턱의 집에서 관리도 할 겸 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정처없는 여행을 끝내고, 이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국면에 접어든 '나'는 생계가 아닌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며 제안들을 수락하고 입주한다. 그런데 그 집의 천장에는 아들도 모르게 숨겨져있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을 발견하고 뜯어보게 된다. 보면 볼수록 몇시간씩 보게 만드는 마성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 그 이후로 밤마다 울리는 알 수 없는 방울소리, 평범함과 거리가 먼 수수께끼의 남자 '멘시키'와의 만남, 그 집의 주인 도미히코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직면하면서 나아가는 이야기다.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1Q84>에 이른 7년만의 복귀작.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많은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1권, 미스테리와 오컬트가 이끄는 쌍두마차

이야기는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1권의 부제는 현현하는 이데아, 2권의 부제는 전이하는 메타포다. 출간 당시에는 하루키의 책은 2부작이면 상,하권으로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3부작의 마지막 권이 1,2권이 발매된 이후에 나오곤 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쉽게도 2부작이다. 왜 아쉬운가? 2권에서의 전개에 사람들의 평이 조금씩 갈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혹평을 몇 가지 가져오자면, '지나친 자가복제의 끝이다' '1권은 탄탄하게 쌓아가다가 2권에서 급하게 매듭지어 버린다' '지나치게 난해하다' 등이 있었다. 필자는 하루키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 자가복제의 평에는 공감할 수 없었고(하루키 첫 작품이므로), 대신 다른 평에는 조금은 공감한다. 1권만 보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미스테리, 오컬트 장르다. 600p라는 1권의 페이지 수는 결코 쉬운 마라톤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금방 걷게되는 거리다. 그 거리를 오컬트를 담당하는 '기사단장'과 기묘함을 담당하는 '멘시키'가 쉬지않고 번갈아가면서 주인공 '나'를 사건의 중심부로 끌어들인다. 특히 멘시키란 인물을 너무 매력적으로 잘 만들었다.

멘시키는 하얀 저택에서 혼자 사는 부호에, 은퇴 전까진 정보업계에서 일하던 인물이였다. 그래서인지 새삼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다방면의 여러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존경이라는 것이 마냥 칭송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남겨진 빚을 기반으로 한 기묘한 경의라는 것도 마냥 일반적이지 않다.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고 마는 추진력과 결단력은 그를 비범한 존재로 만들고, 나이는 들었으나 새하얀 백발의 모습은 흑발들의 세상에서 군계일학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의 이런 행동의 원천이 바로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카가와 마리에'를 곁에서 보기 위함인데, 자신의 친딸인지 확인하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그 가능성만을 가지고 곁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을 원한다. 이런 멘시키가 풍기는 기묘함과 비범함이 1권의 분위기를 지배했고, 멘시키와 함께 겪는 미스테리들이 분위기를 한껏 긴장상태에 놓이게 만든다. 마치 시간이 점점 흐르면 흐를수록 평범한 일상은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난징대학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일본 내에서 하루키의 역사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2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한다

그러나 2권에서 멘시키가 마리에를 만나면서부터 그러한 분위기가 옅어진다. 멘시키는 마리에를 보면서 그 답지 않게, 말을 더듬기도 하고, 긴장해서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하며, 무엇보다 표정이 평소의 여유로운 멘시키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친딸을 만나 당황한 아비의 모습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2권의 전반적인 흐름이 일부 독자들이 기대한 것과 다르게 흘러갈 것임을 내포한 장면이다. 1권까지 읽고 넘어온 필자에겐 '멘시키가 과연 어떻게 그리고 더욱 치밀하게 아키가와 마리에를 손에 넣기 위해서 어떤 짓들을 할 것인가' '기사단장은 어떤 존재이고, 그가 있었던 구덩이는 어디로 이어지는 공간인가, 매번 밤에 울리는 방울은 무엇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인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나는 과연 도모히코를 뒤잇는 전설의 화가가 될 것인가, 그는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와 같은 궁금증이자 전개가 예상되었다. 한마디로 하루키가 만든 설정, 판타지에 직면해서 어떤 진실이 밝혀지고, 인물들의 관계와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본인이 만든 이야기를 정면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옆에서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그것의 첫 모습이 말을 더듬는 멘시키였다. 

이 후의 멘시키는 비범하고 기묘한 모습이 분위기가 사라지고, 그저 딸아이를 보고싶고 곁에 두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비운의 아버지로 변모한다. 아무리 대단한 남자라도 자신의 혈육 앞에선 흔들리고 갈등하는, 일종의 부성애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치만 필자에겐 다소 아쉬운 설정붕괴로 남았을 뿐이다. 주인공 '나' 역시 <기사단장 죽이기>를 세상에 공표하고, 그만의 뛰어난 작품을 그려서 대작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종국엔 유즈와 다시 재결합하여 다시 예전처럼 초상화만 기계적으로 그리는 삶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집 앞 구덩이를 잇는 풍혈의 존재도, 그 풍혈 속을 통과하면서 만났던 돈 안나, 고미, 기사단장(이데아), 메타포들의 존재에 관한 궁금증도 해소되지 않고 마무리된다. 마치 주인공인 '나'가 자꾸 고리를 닫아야 한다고 되내이는 것처럼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한채 이야기가 닫혀버렸다. 대신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으로, 이 사건이 아니였다면 원래대로 가있어야할 자리로 되돌아갔을 뿐이다. 

 

미연시 게임에서 보이는 트루엔딩, 굿엔딩, 배드엔딩. 꼭 무조건 진엔딩을 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트루엔딩(True End)보다는 굿엔딩(Good End)을 선택한 하루키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결말은 아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결말은 나름대로의 감동이 있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자살한 동생, 비밀조직을 결사했으나 끝내 들통나서 처형당하고만 연인과 친구들.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기사단장 죽이기>를 만들었으나 결국 세간에 공표되지 못하고 치매로 죽어가던 아마다 도미히코. 그는 주인공 '나'가 이데아인 기사단장을 찔러 죽이는 모습에서 그가 과거에 죽이지 못했던 나치의 고관을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죽기 며칠 전에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영면에 잠들 수 있었다. 너무나 일찍 죽은 아픈 동생 '고미'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동생처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여아의 봉곳한 가슴을 볼 때마다 고미를 떠올리는 주인공 '나'. '나'는 후지산에서의 풍혈과 닮아 있던 메타포의 풍혈 속에서 고미와 돈 안나(의 형상을 한 것)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람의 생각을 잡아먹는 이중메타포의 촉수를 뿌리치면서 빠져나옴으로써,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죽은 동생처럼 사건 당시에는 가슴이 납작했지만 어느덧 가슴이 자란 마리에의 모습과 <하얀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 그림이 <기사단장 죽이기>와 함께 전소되는 모습에서 주인공 '나'의 트라우마는 해소되었고,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 이 기묘한 이야기가 끝났음을 암시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현실과 부딪힌 이상과 마주하는 등의 트루엔딩을 뭇 여러사람들이 바랬지만, 결국 하루키는 사건의 진상은 묻히고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채,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굿엔딩을 선택했다. 이에 관해서 나누는 '나'와 멘시키의 대화가 있다.

"진실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뿐입니다. 아마 결국에는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겠죠. 물론 저를 포함해서"
"다시 말해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지금 상황을 이대로 지키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제가 멘시키 씨 입장이라면 역시 진실을 알고 싶을 것 같아요. 일단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죠."
멘시키가 미소지었다
"그건 당신이 아직 젊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쯤 되면 당신도 분명 이 심정을 알게 될 겁니다. 진실이 때떄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어쩌면 트루엔딩 대신 굿엔딩을 쓰기로 결정한 하루키의 선택을 이해하기엔 필자가 '아직은' 너무 젊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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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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